[인터뷰①] 자본주의는 왜 작동을 멈췄나…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이 묻는 문명 전환

기후위기·AI·양극화, ‘다중위기’의 뿌리를 묻다…생존주권 회복을 위한 살림셀 구상
성장 중심 경제의 한계를 넘어…‘머니로직’에서 ‘살림로직’으로의 전환



[편집자주] SDX재단 전하진 이사장은 기후위기와 양극화, 인공지능(AI) 기술 혁명을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닌 ‘다중 위기’로 규정한다. 이 세 가지 위기의 공통된 뿌리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기후 문제는 자본주의의 부산물이고, 양극화 역시 같은 토양에서 자라났다. AI 또한 더 많은 이윤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며 인간의 역할을 밀어내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전 이사장이 10년 넘게 고민해온 대안은 ‘살림주의’라는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최소 단위인 ‘살림셀’이다.






25e9f4d6d7b1f.pngSDX재단 전하진 이사장./사진=김경은 기자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일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점이죠.”


IT 전문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명제에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어왔다. 과연 어떤 일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늘릴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본질적인 문제로 확장됐다. 오랜 연구 끝에 전 이사장은 일자리 감소를 개별 현상이 아닌, 문명 전환의 신호로 보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머니로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다. 돈의 효율을 중심으로 움직여 온 이 구조 속에서 AI는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은 더욱 빠르게 효율을 향해 집중된다.

그 결과 다수의 개인은 소비력을 잃고, 아무리 좋은 제품과 기술이 등장해도 이를 소비할 수 없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열심히 일하면 더 소비할 수 있다’는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도시는 돈이 없으면 지옥이 됩니다. 물과 전기, 식량 중 하나만 끊겨도 곧바로 위기가 오죠. 그런데 지금의 도시는 그런 충격에 지나치게 취약한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머니로직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해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저는 그 해답을 가장 작은 단위에서 찾았습니다. 그렇게 정의한 개념이 바로 ‘살림셀’입니다.”

데드라인 2030년? 감축 목표 합쳐도 절반이 안 된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이 기후위기에 본격적으로 파고든 것은 약 5년 전이다. 그러나 관련 데이터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구조적이고 복합적이었다.

“전 세계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모두 합쳐도, 우리가 실제로 줄여야 할 양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이내로 억제하자는 ‘1.5도 목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는 게 현실입니다.”

국제사회는 2030년을 기후위기 대응의 데드라인처럼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말은 많지만,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이사장은 이 간극의 원인을 국가 운영의 기준에서 찾는다. 여전히 국가의 핵심성과지표(KPI)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성장 중심의 경제 구조가 만들어 낸 병폐입니다. 그런데 그 성장 지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은 끊지 말고 절제만 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화될수록 더 취약해지는 사회…“이대로 가면 폭동밖에 없다”

전 이사장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한계로 ‘개인화의 역설’을 짚었다. 사회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은 오히려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케팅과 시장 논리에 따라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을 쪼갭니다. 그런데 개인은 생존의 기반을 국가와 시장에 위임한 채, 노동력을 팔아 살아가는 구조에 묶여 있죠.”

문제는 이 구조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노동은 대체되고, 일자리는 사라진다. 생존을 지탱하던 마지막 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결국 사회는 극단적인 갈등과 폭동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만 해도 18곳에서 폭동과 세 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났고 올해는 이란이 난리가 난 상황이죠.”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개인을 더 쪼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다시 연결되는 구조다. 개인이 원자처럼 흩어지는 대신, 스스로 생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주권을 가진 존재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세포’, 즉 살림셀이다.

왜 ‘가장 작은 단위’인가

전 이사장은 살림셀을 이해하기 위해 ‘컨테이너’와 ‘컴퓨터 산업’의 역사를 예로 든다.

“1953년 한 운송사업자가 컨테이너를 설계했습니다. 너무 편리하다 보니 트럭이 생기고, 배와 항구가 생기면서 세계 물류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컨테이너라는 하나의 기본 단위, 하나의 로직이 물류 혁신을 만든 겁니다.”

컴퓨터 산업도 마찬가지다. 그는 1980년대 자신이 처음 접했던 ‘냉장고만 한 미니 컴퓨터’를 떠올렸다.

“이후 PC가 등장했고, 플로피 디스켓에서 하드디스크로,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진화했죠. 만약 PC 없이 메인프레임만 존재했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팅 파워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도시 역시 같은 구조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인류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고 있는 도시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취약하다.

살림셀은 흔히 말하는 귀촌이나 공동체 실험과 다르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살림셀을 “생활 방식을 바꾸기 위한 현실적인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지금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면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스타트라인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생물종인데 돈이 없으면 못 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를 만들어 보자는 게 살림셀의 기본 개념이에요. 이제는 신재생에너지 같은 여러 기술이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생존주권, 곧 자생력의 문제

전 이사장은 오늘날의 삶이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라고 말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부모 세대가 일부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에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실제로는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머니로직이 붕괴되고 국가가 보호하는 역할에 금이 가면서 소비력이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죠.”

부모의 지원이 있는 일부 계층은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 이사장은 이를 양극화의 심화로 진단했다.

“상위 1%가 전 세계 자산의 절반을 보유하고, 하위 50%는 2~4%만을 갖고 있는 구조입니다. 이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생력, 즉 생존주권이다.

“100% 자립은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자생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내가 추구하는 비전도 달라집니다. 비전이 달라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확장되죠.”

전 이사장은 살림셀이 기본 단위가 되는 사회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가치가 폭발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거와 에너지, 통신 네트워크가 갖춰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 살림셀이 구축되면 아이들은 컴퓨터로 공부하고, 그 자리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앙골라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마을이 조성됐다. 전기와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고, 컴퓨터와 조명이 갖춰진 것만으로도 그곳은 더 이상 빈곤 지역이 아닌 하나의 문명 공간이 된다.

“살림셀이라는 한 세트가 만들어지면, 그다음 수요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기본형이 나오고, 이후에는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등장하죠. 과거 컴퓨터 산업이 XT에서 AT, 386으로 진화해 온 것처럼 살림셀도 계속 버전업됩니다.”

이 과정에서 산업 구조 역시 재편된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반도체와 카메라 모듈, 애플리케이션 산업이 함께 성장했듯, 살림셀이라는 시장이 형성되면 그에 맞는 기술과 제품이 특화돼 공급된다. 전 이사장은 “시장이 없으면 기술은 팔리지 않는다”며 “살림셀은 기후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실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이 그리는 살림셀은 좋은 삶의 공동체를 넘어, 위기 시대에 도시를 떠받칠 최소 단위의 생존 인프라다. 그렇다면 살림셀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고, 어떻게 확산 가능한 시스템이 될 수 있을까. (인터뷰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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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기후 기술이 팔리지 않는 이유…전하진 이사장이 말한 ‘살림셀 시장’

김희연 기자

출처 : 파이낸셜리뷰(http://www.financial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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