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 기자명 장지현 기자 입력 2026.05.06 23:13
국회 포럼서 조각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
정부, VCM 법제화·KRX 통합시장 추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배출권거래제만으로는 탄소중립 이행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커지는 가운데 국민 생활 속 기후행동과 소규모 감축 기술을 탄소자산으로 전환하는 '조각탄소시장' 논의가 본격화됐다.
기존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대규모 프로젝트와 고비용 인증 체계에 묶여 개인·중소기업·지역 단위 참여를 끌어들이기 어려웠다면 한국형 VCM은 디지털 검증과 생활형 감축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다.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전략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SDX재단
SDX재단은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5GAM기후기술연구그룹과 공동으로 '자발적 탄소시장(VCM) 활성화 전략 포럼'을 개최했다. 국회기후변화포럼(한정애·정희용 의원)과 김소희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한국연구재단, 인천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들이 후원으로 참여해 민·관·학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포럼은 정부가 지난달 27일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 방향'을 발표하고 이를 차기 예산안 편성지침에 반영해 탄소중립 투자 확대 기조를 공식화한 시점에서 개최됐다. 정부 차원에서 VCM 활성화를 핵심 과제로 내건 만큼 이번 포럼은 민간 영역의 실행 전략을 구체화하고 민·관 협력의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업이나 개인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감축 사업에 참여해 탄소크레딧을 발급받고 거래하는 시장이다. 의무 감축 대상 기업이 배출권을 사고파는 배출권거래제와 달리 법적 의무가 없는 주체도 감축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현재 글로벌 VCM은 대규모 산림·재생에너지·탄소저감 프로젝트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생활 속 소규모 감축 행동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먼저 기존 규제 중심 기후정책만으로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기후정책의 가장 큰 적은 규제 피로도"라며 "국민과 기업에게 감축을 강제하면 반발이 생기고 반발이 쌓이면 정책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때로는 뒷걸음질도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환경부 장관 재임 당시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도 '어떻게 하면 감축이 부담이 아니라 기회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느냐'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가 이미 탄소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우리나라가 글로벌 VCM의 후발주자로 남는다면 산업계 전반에 소요되는 비용이 천문학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도 환영사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은 정부의 의욕적인 목표 제시나 규제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며 "국민의 생활 속 실천이 인정받고 기업의 감축 노력과 지역의 기후 행동이 새로운 가치로 이어질 때 기후위기 대응은 더 넓고 지속 가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는 '조각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 선언도 함께 진행됐다. 국회와 정부, 지자체, 민간이 함께 참여해 자발적 탄소시장의 제도화 방향와 시민 참여형 탄소감축 모델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각탄소시장은 대규모 산업 현장에 국한됐던 기존 탄소거래의 틀을 깨고 개인의 일상적 기후행동이나 중소기업의 소규모 감축 활동을 데이터화해 경제적 가치로 바꿔주는 새로운 시장 모델이다. 값비싼 탄소 측정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더라도 누구나 새로운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탄소경제 생태계'를 지향한다.
조각탄소시장 얼라이언스는 선언문에서 "흩어져 있던 탄소 감축의 의지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의 장이 되겠다"며 "기술과 자본, 가치를 융합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 가능한 탄소경제의 표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전략 포럼'에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정부, 자발적 탄소시장 육성 시동
정부는 자발적 탄소시장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진승우 기획예산처 탄소중립정책과장은 "2030년 NDC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권거래제 외 추가적인 시장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 과장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 배출 정점 이후 2024년까지 약 9000만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그럼에도 2030년 NDC를 달성하기 위해선 앞으로 약 1억8500만톤을 추가로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 6년간 줄인 양의 두 배가 넘는 감축을 남은 기간에 달성해야 하는 셈이다. 2035년 목표까지 고려하면 향후 필요한 감축량은 약 3억톤 규모로 늘어난다.
기존 배출권거래제(ETS)의 한계도 언급됐다. 국내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배출량의 약 70%를 포괄하고 있지만 국내 배출권 가격은 최근 톤당 1만6000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진 과장은 EU(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이 14만~15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비교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감축보다 배출권을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자발적 탄소 크레딧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발행·평가·검증·거래 전 과정의 제도화 ▲연내 한국거래소(KRX) 내 통합 시장 개설 등을 추진한다. 진 과장은 "2027년 예산 편성 시 VCM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적극 발굴하고 이를 공시 제도나 동반성장 지수 등 제도권과 연결해 수요처를 다양화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전략 포럼'에서 진승우 기획예산처 탄소중립정책과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생활형 탄소시장 실증대로
경기도의 '기후행동 기회소득' 선례도 주목 받았다.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도민들이 앱을 통해 일상 속 탄소중립 활동에 참여하면 지역화폐 형태의 리워드를 지급하는 정책이다. 2024년 7월 출시 이후 가입자가 빠르게 늘면서 발표 시점 기준 약 193만5000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경기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심재성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본부장은 "탄소포인트제는 2010년부터 시작됐지만 경기도 가입률은 17개 광역지자체 중 하위권인 5.5% 수준이었다"며 "도민들의 관심이 낮은 것이 아니라 트렌드에 맞는 참여 방식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자원순환 ▲교통 ▲에너지 ▲인식 제고 등 4개 분야 16개 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참여자는 활동 내역에 따라 연간 최대 6만원 수준의 지역화폐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병목은 지속가능성이다. 참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면서 예산 부담도 커졌다. 2024년에는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10월 조기 종료됐고 2025년에는 약 450억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했지만 355억원을 확보해 리워드를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올해 역시 약 700억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할 수 있다는 고민도 공유됐다.
경기도가 자발적 탄소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민들이 앱을 통해 실천한 기후행동과 감축 데이터를 VCM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면 크레딧 판매 수익을 다시 리워드 재원으로 활용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혜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원장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플랫폼을 그냥 남기기에는 아까웠다"며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탄소시장을 데이터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전략 포럼'에서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0.1톤 감축도 크레딧으로…MCI 기반 조각탄소시장 제안
SDX재단은 기존 VCM이 포착하지 못한 소규모 감축 행동을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안으로 '조각탄소시장'을 제안했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기조발제에서 "기존 자발적 탄소크레딧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규모 탄소감축량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작도 하기 어렵다"며 "1톤, 0.5톤, 0.1톤의 감축은 크레딧화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이 제시한 조각탄소시장은 기존 의무 배출권시장이나 국가 NDC에 직접 연계되는 탄소크레딧과 별도의 영역으로 설계된다. 국가가 관리하는 감축 체계는 그대로 두되 개인과 지역, 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설정한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SDX재단은 조각탄소 감축 체계를 기반으로 한 크레딧 모델 MCI(Micro Carbon Initiative)를 제시했다. MCI는 소규모 감축 활동을 디지털 데이터로 검증하고 이를 크레딧으로 전환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토콜이다.
최경식 SDX재단 위원장은 MCI 기반 크레딧 발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조각탄소 크레딧을 개인이나 지역 단위의 기후행동을 평가하는 MCA(기후행동)와 기후테크 기반 감축을 검증하는 MCC(기후테크 크레딧)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MCA는 대중교통 이용, 자전거 이용, 걷기, 가정용 태양광 설치, 고효율 가전제품 구입, 다회용기 이용 등 시민의 일상 행동을 대상으로 한다. 완전한 MRV가 어려운 영역이지만 정부가 제시한 산정 지침이나 기존 통계, 보수적인 베이스라인 설정 등을 활용해 감축량을 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행된 크레딧은 개인 디지털 지갑에 들어가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력을 관리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MCC는 기후테크 기술을 활용한 감축 실적을 크레딧화하는 방식이다. 특정 기술이나 제품을 사용해 실제 에너지 절감 또는 배출 저감이 발생하고 시험성적서나 디지털 데이터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크레딧을 발행한다.
SDX재단은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시민 참여자뿐 아니라 기후테크 기업, 현장 운영자 등이 함께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최 위원장은 "기후테크 기업도 탄소크레딧으로 수익이 생기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며 "기후테크 투자가 늘어나면 기술 혁신이 만들어지고 탄소감축도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안착 관건은 신뢰와 수요…그린워싱 방지 과제도
다만 조각탄소시장이 실제 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감축량 산정의 신뢰성, 크레딧 품질 평가, 거래 투명성, 그린워싱 방지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생활형 기후행동처럼 정량 검증이 어려운 영역을 어떤 기준으로 가치화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수요 창출 역시 관건이다. 아무리 다양한 크레딧이 발행돼도 이를 구매할 기업과 기관이 없다면 시장은 지속되기 어렵다. 정부가 지속가능성 공시, 동반성장지수, 외부사업 등 제도권과의 연계를 검토하는 이유다.
엔터테인먼트, ESG 경영을 추진하는 중소·중견기업, 지역 기반 기업 등이 생활형 탄소크레딧의 초기 수요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편 SDX재단은 이번 포럼 논의를 바탕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의 제도적 안착을 위한 정책 제언을 이어가며 민간 차원의 실행력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감축 데이터를 자산화하여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기후 대응 표준을 정립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출처 : ER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 바로가기
이코노믹리뷰 기자명 장지현 기자 입력 2026.05.06 23:13
국회 포럼서 조각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
정부, VCM 법제화·KRX 통합시장 추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배출권거래제만으로는 탄소중립 이행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커지는 가운데 국민 생활 속 기후행동과 소규모 감축 기술을 탄소자산으로 전환하는 '조각탄소시장' 논의가 본격화됐다.
기존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대규모 프로젝트와 고비용 인증 체계에 묶여 개인·중소기업·지역 단위 참여를 끌어들이기 어려웠다면 한국형 VCM은 디지털 검증과 생활형 감축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다.
SDX재단은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5GAM기후기술연구그룹과 공동으로 '자발적 탄소시장(VCM) 활성화 전략 포럼'을 개최했다. 국회기후변화포럼(한정애·정희용 의원)과 김소희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한국연구재단, 인천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들이 후원으로 참여해 민·관·학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전략 포럼'에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전략 포럼'에서 진승우 기획예산처 탄소중립정책과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번 포럼은 정부가 지난달 27일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 방향'을 발표하고 이를 차기 예산안 편성지침에 반영해 탄소중립 투자 확대 기조를 공식화한 시점에서 개최됐다. 정부 차원에서 VCM 활성화를 핵심 과제로 내건 만큼 이번 포럼은 민간 영역의 실행 전략을 구체화하고 민·관 협력의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업이나 개인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감축 사업에 참여해 탄소크레딧을 발급받고 거래하는 시장이다. 의무 감축 대상 기업이 배출권을 사고파는 배출권거래제와 달리 법적 의무가 없는 주체도 감축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현재 글로벌 VCM은 대규모 산림·재생에너지·탄소저감 프로젝트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생활 속 소규모 감축 행동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먼저 기존 규제 중심 기후정책만으로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기후정책의 가장 큰 적은 규제 피로도"라며 "국민과 기업에게 감축을 강제하면 반발이 생기고 반발이 쌓이면 정책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때로는 뒷걸음질도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환경부 장관 재임 당시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도 '어떻게 하면 감축이 부담이 아니라 기회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느냐'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가 이미 탄소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우리나라가 글로벌 VCM의 후발주자로 남는다면 산업계 전반에 소요되는 비용이 천문학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도 환영사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은 정부의 의욕적인 목표 제시나 규제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며 "국민의 생활 속 실천이 인정받고 기업의 감축 노력과 지역의 기후 행동이 새로운 가치로 이어질 때 기후위기 대응은 더 넓고 지속 가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는 '조각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 선언도 함께 진행됐다. 국회와 정부, 지자체, 민간이 함께 참여해 자발적 탄소시장의 제도화 방향와 시민 참여형 탄소감축 모델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각탄소시장은 대규모 산업 현장에 국한됐던 기존 탄소거래의 틀을 깨고 개인의 일상적 기후행동이나 중소기업의 소규모 감축 활동을 데이터화해 경제적 가치로 바꿔주는 새로운 시장 모델이다. 값비싼 탄소 측정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더라도 누구나 새로운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탄소경제 생태계'를 지향한다.
조각탄소시장 얼라이언스는 선언문에서 "흩어져 있던 탄소 감축의 의지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의 장이 되겠다"며 "기술과 자본, 가치를 융합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 가능한 탄소경제의 표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정부, 자발적 탄소시장 육성 시동
정부는 자발적 탄소시장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진승우 기획예산처 탄소중립정책과장은 "2030년 NDC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권거래제 외 추가적인 시장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 과장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 배출 정점 이후 2024년까지 약 9000만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그럼에도 2030년 NDC를 달성하기 위해선 앞으로 약 1억8500만톤을 추가로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 6년간 줄인 양의 두 배가 넘는 감축을 남은 기간에 달성해야 하는 셈이다. 2035년 목표까지 고려하면 향후 필요한 감축량은 약 3억톤 규모로 늘어난다.
기존 배출권거래제(ETS)의 한계도 언급됐다. 국내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배출량의 약 70%를 포괄하고 있지만 국내 배출권 가격은 최근 톤당 1만6000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진 과장은 EU(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이 14만~15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비교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감축보다 배출권을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자발적 탄소 크레딧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발행·평가·검증·거래 전 과정의 제도화 ▲연내 한국거래소(KRX) 내 통합 시장 개설 등을 추진한다. 진 과장은 "2027년 예산 편성 시 VCM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적극 발굴하고 이를 공시 제도나 동반성장 지수 등 제도권과 연결해 수요처를 다양화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생활형 탄소시장 실증대로
경기도의 '기후행동 기회소득' 선례도 주목 받았다.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도민들이 앱을 통해 일상 속 탄소중립 활동에 참여하면 지역화폐 형태의 리워드를 지급하는 정책이다. 2024년 7월 출시 이후 가입자가 빠르게 늘면서 발표 시점 기준 약 193만5000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경기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심재성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본부장은 "탄소포인트제는 2010년부터 시작됐지만 경기도 가입률은 17개 광역지자체 중 하위권인 5.5% 수준이었다"며 "도민들의 관심이 낮은 것이 아니라 트렌드에 맞는 참여 방식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자원순환 ▲교통 ▲에너지 ▲인식 제고 등 4개 분야 16개 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참여자는 활동 내역에 따라 연간 최대 6만원 수준의 지역화폐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병목은 지속가능성이다. 참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면서 예산 부담도 커졌다. 2024년에는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10월 조기 종료됐고 2025년에는 약 450억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했지만 355억원을 확보해 리워드를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올해 역시 약 700억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할 수 있다는 고민도 공유됐다.
경기도가 자발적 탄소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민들이 앱을 통해 실천한 기후행동과 감축 데이터를 VCM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면 크레딧 판매 수익을 다시 리워드 재원으로 활용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혜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원장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플랫폼을 그냥 남기기에는 아까웠다"며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탄소시장을 데이터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0.1톤 감축도 크레딧으로…MCI 기반 조각탄소시장 제안
SDX재단은 기존 VCM이 포착하지 못한 소규모 감축 행동을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안으로 '조각탄소시장'을 제안했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기조발제에서 "기존 자발적 탄소크레딧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규모 탄소감축량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작도 하기 어렵다"며 "1톤, 0.5톤, 0.1톤의 감축은 크레딧화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이 제시한 조각탄소시장은 기존 의무 배출권시장이나 국가 NDC에 직접 연계되는 탄소크레딧과 별도의 영역으로 설계된다. 국가가 관리하는 감축 체계는 그대로 두되 개인과 지역, 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설정한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SDX재단은 조각탄소 감축 체계를 기반으로 한 크레딧 모델 MCI(Micro Carbon Initiative)를 제시했다. MCI는 소규모 감축 활동을 디지털 데이터로 검증하고 이를 크레딧으로 전환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토콜이다.
최경식 SDX재단 위원장은 MCI 기반 크레딧 발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조각탄소 크레딧을 개인이나 지역 단위의 기후행동을 평가하는 MCA(기후행동)와 기후테크 기반 감축을 검증하는 MCC(기후테크 크레딧)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MCA는 대중교통 이용, 자전거 이용, 걷기, 가정용 태양광 설치, 고효율 가전제품 구입, 다회용기 이용 등 시민의 일상 행동을 대상으로 한다. 완전한 MRV가 어려운 영역이지만 정부가 제시한 산정 지침이나 기존 통계, 보수적인 베이스라인 설정 등을 활용해 감축량을 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행된 크레딧은 개인 디지털 지갑에 들어가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력을 관리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MCC는 기후테크 기술을 활용한 감축 실적을 크레딧화하는 방식이다. 특정 기술이나 제품을 사용해 실제 에너지 절감 또는 배출 저감이 발생하고 시험성적서나 디지털 데이터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크레딧을 발행한다.
SDX재단은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시민 참여자뿐 아니라 기후테크 기업, 현장 운영자 등이 함께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최 위원장은 "기후테크 기업도 탄소크레딧으로 수익이 생기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며 "기후테크 투자가 늘어나면 기술 혁신이 만들어지고 탄소감축도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안착 관건은 신뢰와 수요…그린워싱 방지 과제도
다만 조각탄소시장이 실제 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감축량 산정의 신뢰성, 크레딧 품질 평가, 거래 투명성, 그린워싱 방지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생활형 기후행동처럼 정량 검증이 어려운 영역을 어떤 기준으로 가치화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수요 창출 역시 관건이다. 아무리 다양한 크레딧이 발행돼도 이를 구매할 기업과 기관이 없다면 시장은 지속되기 어렵다. 정부가 지속가능성 공시, 동반성장지수, 외부사업 등 제도권과의 연계를 검토하는 이유다.
엔터테인먼트, ESG 경영을 추진하는 중소·중견기업, 지역 기반 기업 등이 생활형 탄소크레딧의 초기 수요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편 SDX재단은 이번 포럼 논의를 바탕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의 제도적 안착을 위한 정책 제언을 이어가며 민간 차원의 실행력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감축 데이터를 자산화하여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기후 대응 표준을 정립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출처 : ER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 바로가기